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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장육부의 이치 세상 사람들이 천지 만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는 힘을 쓰면서, 자기 몸에 있는 오장육부와 모발과 힘줄, 뼈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옛날의 유학자들이 한탄하였거늘 하물며 의사가 이를 잘 몰라서야 되겠는가? - 동의보감 오장육부의 인체의 기본임을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 오장과 육부 오장과 육부는 음과 양으로 나뉘는데, 오장인 간, 심장, 비, 폐, 신이 음에 속하고, 그 바깥에 있는 쓸개, 위, 대장, 소장, 방광, 삼초가 양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오장은 정기신혈(精氣神血)을 간직하고 육부는 음식물을 소화시키고 진액을 돌게 하는 기능을 한다. 육부는 창고(府)를 뜻하기에 해당하는 기관들이 비어있다. 즉 위, 쓸개, 소장, 대장, 방광 등이 모두 비어있는 기관이다. 오장과 육부는 짝을 이룬다. .. 2022. 6. 24.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사실 나에 대해서 뭐라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자신에 대해서 100%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알고 있다는 사람은 정말 자신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입체적으로 빠짐없이 보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내 생각과 행동이 상당히 모순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것을 원하지만, 몸은 저것을 하고 있을 때가 있고,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원하고 하는 등의 모순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것이 일어나는 이유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환경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상당히 많이 작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해마다 이사를 다녔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한 나라가 다 다르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혈액형에 변화마저 .. 2022. 6. 24.
염불의 중요성 염불을 한국에서는 단순히 아미타불 하고 되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염불은 그런 기계적인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염불이란 부처를 염한다는 뜻이며, 그 염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진실로 부처와 닿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적인 되내임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된다. 염불을 할 때 돈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돈을 염하는 것이지 부처를 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염불의 중요성은 굳이 다양한 스님들의 말씀을 듣고서야 깨닫는 것이 아니다. 염불이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수행자임을 인식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상기하는 행위이며 끊임없이 망각하는 이 허상의 삶 속에서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로 아미타불 하지 않지.. 2022. 6. 24.
한의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역사와 경전, 전통의학,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경전에 나오는 말이 사실임을 알지 못하고서 공부하는 것은 사기치는 것에 불과하다. 경전에 나오는 모든 말이 달콤한 지식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며, 단순히 활자에 그친 지식으로 생각된다면 아무리 공부해도 그것은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없다. 경전의 모든 말씀들이 내 몸에 흘러다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야 공부는 시작될 수 있다. 우리는 현대로 오면서 과학과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고 고대인들을 무식한 사람들이었다고 깔보기 쉽지만, 사실을 말하면 오히려 우리의 수준을 땅으로 떨어졌고, 고대에 가능하던 것들이 지금은 불가능하게 된 것들이 많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의술을 펼칠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마음이 맑아야 하는 것이며, 소우주인 인체를 다루기 위해.. 2022. 6. 23.
글을 쓰는 이유 나는 꾸준히 글을 써왔다. 그 글이 잘 읽히는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그런 디테일한 것은 신경쓰지 않고 다만 지금 당장 내 마음 속에 표현해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것들을 글로 담아왔고, 그렇기에 나는 과거에 써온 글들을 내 마음을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고 싶을 때라면 미련없이 지우고 태워버리곤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자유로운 대화 같다고 여겨진다. 삶 속에서는 부모님이나 친구를 포함해서 말하기 어려운 주제나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100% 나의 삶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이야기를 들어주더라도 100% 공감을 바랄 수도 없다. 그런데 글 속에서는 내 자신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 무의식 중에 나의 100%가 표현되게.. 2022.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