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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

by 兌蓮 2022. 8. 20.

나는 일상 속에서 꾸준히 명상을 한다. 그것은 눈을 감고 하는 일반적인 명상일 때도 있고, 걸으면서 하는 명상이 있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하는 명상이라는 것도 있다.

 

명상이란 깨어있는 관점이기에 그것을 알고 나면 자유롭게 명상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명상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고 개선하는 과정이자,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고서 삶을 꿰뚫어보는 마음이다.

 

세상에는 정리해야 하는 것도 있고, 더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우리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곤 한다. 보이지 않고, 보이더라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명상은 그러한 삶 속에서 벗어나 온전한 통찰을 주고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곳에 있다.

 

나 또한 캐나다에 나와서 몸은 바쁘기는 했지만, 마음은 게으르지 않았던가 싶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흘려보내는 시간의 가치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지내는 시간의 가치는 천지차이다.

 

이제 캐나다에 도착하여 약 한달의 시간이 지났다.

 

방을 구했고, 좋은 룸메들과 커뮤니티를 찾았고, 학교를 위한 서류 준비와 은행준비, 직업을 찾기 위한 sin 넘버 취득하기, 환경에 적응하기 등까지 참 다양한 것을 했다.

 

자신이 짜온 전략과 계획대로 지금까지는 잘 흘러오고 있지만, 조금씩 또 자신이 가는 방향과 또 다른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듯하다.

 

수행자로서 계획을 세운다는 의미는 단순히 인생의 행로를 계획하는 측면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명확히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부터 운명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모든 내 선택은 그 계획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늘은 그 이후로부터 다양한 사건들과 인연을 준비해주고 나는 하루 하루 새롭게 눈뜨며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계획하고 본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되어가는지를 확인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가야할 길, 하늘이 제시해주는 길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사는 삶이란, 강을 역류해서 가려고 하는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영혼이 가고 싶은 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운명은 가로막히고 모든 것이 방해물과 같이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방해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방해물로 본 것이고, 그것은 사실 내가 가야할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한 길잡이 역할이었음을 알지 못하기에 원망하는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아는 것은 과거를 아는 것이고, 미래를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그 속에서 내가 행하고 있는 억지스러운 어리석음은 무엇일까?

 

지금 무언가를 해서 더 나은 삶이 오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무언가를 하고 있어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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