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우주변화의 원리

우주변화의 원리 - 서문

兌蓮 2022. 8. 24. 13:40
지구와 일월은 아무런 사심도 없이 다만 돌기 위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리사욕의 함정에서 헤매고 있다. 오히려 무정한 금석초목마저 자연과 같이 호흡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정없는 자연보다도 오히려 인색한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 주어진 유일한 시련이므로 철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천 년의 세월을 소모했건만 아직까지도 자연 그대로의 신비로써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 속에서 어떤 목적과 행복을 찾겠다고 하면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언제나 텅빈 마음과 우울함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산천초목이 순환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토록 완벽한 조화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란 것은 다만 수동적이며 묘사적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우주가 자기의 운행법칙을 상으로써 드리워줄 때에 한하여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은 형이 아니므로 정욕적인 인간의 혼탁한 이성작용으로써 상을 알아내기는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속적인 인간이 자기의 지능으로써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바로 경험적인 오성작용의 구사에 불과하므로 이것으로는 물질계의 현상은 엿아할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계라는 객관적 대상은 주관적인 변화의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일반적인 이성으로써 형이상에 속하는 변화의 실상을 연구하기 위해서 즉 천수상한 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복사해 놓은 우주의 상을 먼저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불문율인 실상을 연구해 낼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직한 자연이 드리워 주는 우주의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칠정육욕에 사로잡혀서 자연법칙에 순종하는데 인색하다. 인색은 욕심에서 생겨나고 욕심에는 목적이 따른다. 그러므로 목적을 대상아로 하는 것으로써 욕심이 없는 것이 없고 욕심이 있는 것으로서 인색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무정한 초목은 오히려 인색하지 않는데 유정한 인간이 오히려 인색한 것은 웬일일까 하는 문제를 풀어내고 또 그 오점을 시정하는 것이 바로 신비의 문을 여는 방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자연법칙에 정통하고 또 근취저신하는 방법을 안다고 할지라도 이 문제를 알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으로서 도문을 열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인은 제일 먼저 인간에 대한 본질부터 연구하고 따라서 천지자연의 법칙대로 행하는 것만이 도통의 기반을 이루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런즉, 이 문제를 탐구하는 방법은 우선 인물의 생성변화를 알아야 하고 인물의 생성변화를 알려면 우주변화의 법칙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법칙과 변화에 의해서 인체의 비밀을 따져 나가면 인체의 정신의 활동을 알게 되는 것이므로 자연히 선악과 정욕의 소자출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알게 된 인간은 불교가 말하는 바의 법신으로 화하게 되어서 그의 이성은 순수 본연의 경지에 이르게 되므로 모순대립은 지양되고 다만 유정유일한 평화의 경계에 서게 되므로 칠정육욕의 포위망을 벗어나게 되어서 정신은 명으로 통일되는 것인즉 그때 만상의 변화는 바로 장중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