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자존감이 하락하는 일들을 참 많이도 경험한다. 신체적 결함, 가난, 많지 않은 친구, 낮은 성적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어떤 것을 인정받아서 살아가다가도 분명 삶의 어떤 부분에서 우리는 자존감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자존감의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내 자신이든 외부에서든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컨데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은 얼마를 벌어야 하며, 키는 얼마나 커야 하며, 이 나이 때에는 어느 정도의 삶의 수준이어야 하며, 어떤 성취가 있어야 하며, 어떤 학위가 있어야 하며 하는 외적인 요인들이다.
한 달 200을 벌던 사람들은 2000만원 버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꿈꾸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2000만원을 버는 사람들은 대다수보다 잘 버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교만을 떨겠으나, 그 교만은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듯한데 여행다니면서 2000만원을 벌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패배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자존감이 커질 수 없다. 항상 우리는 자기보다 큰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하찮은 존재감을 바라보게 되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실패한 인생을 예약했던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나도 한참을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공부를 곧잘 하면서도 전교 순위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분했고, 남들보다 키크지 못한 것이 분했고, 이미 부자가 되어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교했고, 기타나 피아노를 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부러워하기만 했다.
그런 비교를 통해서 삶의 목표를 정해왔고, 그것을 롤모델로 삼아서 방법을 강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마음은 급해서 당장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지 않으면 쉽게 좌절하거나 자기합리화도 잘했었다.
이 세상은 상대적인 세상이고, 그러므로 크고 작음이 있고, 깊고 얕음이 있고, 선과 악이 있는 세계이므로, 자신의 위치를 외부를 기준으로 알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비교를 통해 지금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에 어떤 잘못이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현실을 알았을 때 좌절하는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바로잡거나,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자존감을 되찾은 계기는 이미 내가 내 자신 있는 그대로 완벽한 씨앗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명상을 하고 잠들었을 때 꾼 꿈 이후였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한 직선 상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의 구분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본질을 말하자면 거기에 삶도 죽음도 없었으며, 꿈과 현실의 차이도 있지 않았다. 물론 거기에는 부처와 인간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경전이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발걸음에는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고, 타인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그 믿음을 확고히 하고 있을 때,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남들이 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하든지 인내할 수 있게 되었고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내 현재 이 꿈과 같은 모습에 대한 평가일 따름이며, 그것이 아무리 정확한 사실이라고 할 지 언정, 나의 본질도, 그들 자신의 본질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가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무한한 자존감의 원천 속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며, 걷되 텅빈 거리를 걸어야 하며, 바라보되 바라봄이 없어야 하며, 말을 하되 함이 없어야 하며, 명상하되 눈을 감지 않아야 한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본질과 하나되어 있는 순간에 나를 침범할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게 되고, 나는 무한한 힘과 지혜를 지닌 완벽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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