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이야기

이름없는 산과의 대화

by 兌蓮 2022. 6. 11.

내 자신이 너무나도 나약하고 약하게 느껴질 때, 나는 자주 산에 올랐다. 울쩍한 마음으로 건너편에 있는 산에게 마음으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한결같이 듬직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니?"

 

그러나 산은 이렇게 내 마음을 통해 대답해줬다.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

 

그때 나는 알았다. 이 산은 자신 안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과 새들과 냇물을 자신의 아들딸처럼 아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많은 생명들은 산에 의지하고 있었으며, 산은 이들을 책임감과 사랑으로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와 어른의 구분은 몸의 크기나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지켜야 하는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갈 때, 그리하여 많은 고난을 감내할 수 있을 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인의 부모가 되고, 부처님이 가장 큰 천지의 부모가 되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의 크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한 산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아끼고 보살핀다면, 그래서 그 생명들이 내 마음 속 한 가운데에 있다면, 나는 그들의 부모가 되고 내 마음의 크기는 바로 산의 그것과 같게 된다. 이와 동일하게 바다를 품을 수 있고, 우주를 품을 수 있으며 조상을 품고, 후손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경계선은 스스로 정하고, 사랑의 깊이 또한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혹자는 어떻게 만물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우리 몸은 하나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하고.

 

과연 한계가 있을까? 그 한계란 무엇을 뜻할까? 밥벌어 먹이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바로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다.

 

밥을 먹고, 살고 죽고 하는 문제는 인간이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바로 하늘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한계를 정하지 않고 마음의 경계를 안과 밖이 없도록 확장하는 일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과학이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의 가능성은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며, 모든 물질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한낱 고깃덩어리에 가둬서는 안된다. 자신의 육신을 기준으로 사랑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해서는 안된다. 그렇게하면 사랑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될 수 밖에 없다.

 

사랑에 한계를 정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그 마음은 무한하게 확장되게 되고 주파수는 성인의 그것과 같아지게 되어 같은 공간 속 높은 차원에 연결되게 된다. 이때, 내가 지금 이 생명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은 과학의 힘도 아니고, 부모님의 힘도 아니고, 어떤 음식의 힘도 아니며, 지나온 세월 속에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천지에 가득한 덕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과거의 성인들이,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성인들이 이 지구를 지탱하고 나의 생명과 만물의 생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바로 이 덕이다. 이들의 책임지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은 어느 공간과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초월하였고, 선악의 구분조차 초월하여 근원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성인의 마음을 느끼고, 그들의 품속에서 살아가고 싶다면, 죽어서 가는 극락을 바래서는 안된다. 지금 내가 현존하는 이 자리에 이미 존재하는 그 마음의 극락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 열쇠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원수까지도 지극하게 사랑할 수 있는 깊은 사랑의 마음에 있으며,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 크게 보이는 난관을 넘어서고나면, 그 작은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여 스스로 고통스럽게 지옥을 오가며 윤회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며,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진성의 깨달음은 머리의 깨달음과 논리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이심전심으로써 성인의 마음에 도달할 때 합치되어 체득함을 의미한다.

 

그곳은 따뜻한 곳이며, 안락한 곳이며, 위험하지 않은 곳이며, 한계가 없는 곳이며, 악함이 없는 곳이며, 지극히 밝고 아늑한 곳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이곳에 예수가 재림하고 미륵이 나타나는 것이며, 천국과 극락이 현현하게 된다. 그것은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나타나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이들을 위한 축복이다.

 

산과 호수와 바다를 포함한 모든 생명의 천지의 마음과 덕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