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연극의 각본가
만물은 분명히 나의 분신이다. 저기 앉아 있으면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도 나고, 내 앞에 지나가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의 모습도 나고, 비가 내리는 창가의 모습의 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진리이다. 그러한 진리는 나를 어떤 자리에 데려다주는가? 앎이 앎에 그친다면 그것은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시 자신을 속박하는 개념이 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음료수를 쏟는다. 차갑고 불쾌한 감각.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인연이 있어 음료수는 나에게 쏟아진 것일까?
음료수가 쏟아진 그 순간, 나는 그 감각에 사로잡혀 실상을 놓쳐버리고 느낌과 감정에 휩쌓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두려움과 기쁨, 고통과 행복, 따뜻함과 차가움 이런 감각들이 마음 속에서 오가는 것이 느껴진다.
두려움의 감각이 클수록, 기쁨의 감각이 클수록, 뜨거움과 차가움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감각이 격렬할수록에 우리는 현실이라는 환영을 진실한 것으로 믿게 된다. 감각이 얼마나 뚜렷하든지, 그 감각 역시 실제하지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고통과 두려움이 왔을 때의 자연스럽고 기계적인 반응은 화를 내거나 불쾌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현상의 흐름을 바라보고 그것이 바라는 것의 逆역의 행동을 한다. 프로그램의 익숙한 흐름이 깨지게 되고, 나는 그 순간 그 세계의 계획된 흐름을 벗어난 자유인이 된다.
화가 나야 하는 순간에 감사를 하고, 고통스러워야 할 순간에 미소를 짓는 힘이다.
즐겁고 쾌락적인 순간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힘이다.
소유할 수 있을 때에 소유하지 않고 베푸는 힘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한 바탕 꿈이며 연극이며, 그 연극의 각본가가 자신임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